작성일 : 09-09-04 08:53
귤장사의 변명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5,981  

항주杭州에 한 과일장사가 있었다.
그는 감귤을 갈무리하는 솜씨가 남달랐다.
겨울을 지내고 여름을 나도 귤이 무르지 않은 채 물이 선연하였다.
바탕은 구슬이요, 색깔은 황금이었다.
저자에 내놓으면 값이 열 배라도 금세 동이 났다.

나도 덩달아 한 개를 샀다.
갈라보았더니, 이게 웬일인가?
매케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속을 보니 헌 솜처럼 말라 있었다.
참으로 이상했다.
나는 주인에게 물엇다.

"아니, 당신이 판 귤은 변두같은 제기에 괴었다가 제사를 모시거나 손님을 접대하는 데 쓰는 겁니까?
아니면 그 반짝이는 외모로 바보와 소경 들을 눈속임하려는 겁니까?
해도 너무합니다그려."

귤장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과일을 판 지는 아주 오래되었소.
이걸로 밥을 먹고 있소.
나는 팔고 손님은 사고, 그렇게 살지요.
여태 아무 말썽도 없었는데 오직 당신 혼자서 불만이시구려.
세상에 여기저기 사기꾼이랍데다.
설마 나라고 사기 칠 수 없을까요?
그러니 당신 생각이 모자란 거지요.

지금 호부虎符를 달고 호피虎皮에 앉아 있는 장군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나라를 지킬 기상을 보이건만,
과연 그들이 춘추 때 손무나 전국 때 오기의 전략을 갖추고 있겠습니까?
또 높다란 모자를 눌러쓰고  허리띠를 길게 늘인 사대부의 비범하고 세상을 초탈한 듯한 풍채는
나라를 다스릴 재능을 보이건만, 과연 그들이 은나라 때 이윤이나 요순 때 고도의 공적을 쌓았겠습니까?

도둑이 끓어도 그들을 막지 못하고, 백성이 고달파도 그들을 건지지 못하고,
관리가 부패해도 그것을 금하지 못하고, 법제가 문란해도 그것을 정비하지 못하고,
국고가 문란해도 그것을 뉘우치지 못하고 있소.

그들은 높은 집에 살며 준마를 타고 미주美酒에 얼근히 취하고 진미로 배를 채웠으니,
누군들 그들의 등등한 기세와 위풍을 보고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겠소?
또 그들의 어디를 보아도 그 외모는 금이나 옥처럼 번득이지만
그 속은 헌 솜처럼 푸석푸석하지 않겠소?

지금 당신은 이런 이치를 모른 채 다만 나의 감귤을 따지고 있는 거요."

나는 그 장사의 말을 듣고 할말을 찾지 못했다.
물러나 생각하니 그는 동방삭東方朔과 비슷한 골계滑稽의 인물이었다.
아니면 세상에 분개하고 세속을 질타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감귤을 빌려 이 세속을 풍자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