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9-04 08:51
이렇게 다를 수가.......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5,918  

 

늦가을에 지리산을 다녀왔다.
산을 오르다 보니 나무 하나가 넘어져 계곡에 걸처져 있었다.
무심결에
“건너갈 수 있을까?”
했더니, 일행중 한사람이
“부러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균형을 잡아 떨어지지않고 잘 건너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부러질 것을 걱정한 것이었다.
“이렇게도 다를 수 있나?”하고 혼자 웃는데
남들은 이상하다는듯 쳐다보았다.

19세기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어느 날 친구인 화가 제임스 휘슬러의 집을 찾았다.
작품을 둘러 보던 마크 트웨인이
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은 그림 하나를 만지려 들자
휘슬러가 놀라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러자 마크 트웨인이 천연덕스럽게 내뱉은 한마디.
“괜찮아. 난 장갑을 끼었거든.”
채 마르지 않은 자신의 작품을 걱정하는 화가에게,
오히려 물감이 묻을까 자신의 손가락을 걱정하는 대중도 있음을 일깨워 준 마크 트웨인의 익살이었다.

석용산 스님이 쓴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여름 오후 졸음을 고자, 암자길을 따라 오르고 있었다.
시원한 솔바람에 땀을 식히고자 바위에 걸터앉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눈을 돌리니 조금 떨어진 숲속에 남녀가 어우러져 있었다.
“에이, 고이연!”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젊은 승려의 호기심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리게 하였다.
눈길이 마주친 사내는 아랫마을에 살고 있는 착하고 예의바른 총각이었다.
항상 예의가 발라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저럴 줄이야.
돌아 내려오는 등 뒤에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변명을 하려고...
그러나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상황이 전혀 달랐다.
목을 맨 처녀를 구해 놓고 인공호흡을 시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입에 숨을 불어 넣고 심장을 뛰게하려는 몸짓을 사랑의 행위로 오인한 것이다.
스님은 그 후 어떠한 사실이던,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일이라도
내용과 사정을 알기 전에는 결코 “옳다” “그러다”는 판단을 하지않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내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번쯤은 들려 주고 싶은 말이요, 경험이다.
사람은 다양하다.
재능도 다르고, 성품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공동체 정신의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