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9-04 08:45
大器晩成의 진리
 글쓴이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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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江戶) 막부의 초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
봉건 일본 사회의 300년 내전을 종식 시키고 막부(幕府)체제를 열어,
군사적 경제적 안정을 이룩한 도쿠가와는 진정 한 시대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위업 달성 과정에 자신의 토대를 송두리째 파탄 시킬 모반을 꾀한 두 사람의 신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오가 야시로 이고, 다른 하나는 오쿠보 나가야스라는 인물입니다.

작은 영토의 영주 시절 젊은 도쿠가와가 발탁한 야시로는 일개 병졸의 자식으로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영리하고 성실함을 인정받아 벼락출세를 했습니다.
20개 마을을 다스리는 대관(代官)의 지위에 오른 그는 전쟁물자를 조달 관리하는 업무를 한치의 차질 없이 해 내 능력을 인정 받았습니다.

야시로의 반심은 엉뚱한 곳에서 싹이 텄습니다.
충복이 된 그는 꺽달진 성격 때문에 도쿠가와로부터 소박 맞은 조강지처와 정을 통한 뒤로,
주군도 마님도 자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입니다.
급기야 야시로는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도쿠가와가 출정하면,
마님의 친정인 다께다 병력을 성안으로 끌어들일 모의를 하다 부하의 밀고로 탄로가 났습니다.

역모의 이유를 묻는 군관에게 야시로는 “내 주판으로는 다께다 군의 승산이 크다.
다께다 군에게 승리를 거두게 하여 쓸 데 없는 낭비를 피하게 하고, 백성들을 고난에서 구출하는 것이 뒷날을 위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 강변했습니다.
전쟁에 이기는 길 밖에 모르는 도쿠가와 보다 자신이 더 백성을 위하는 구세주라는 궤변입니다.

야시로의 충직성을 철석같이 믿었던 도쿠가와도
“나의 처벌이 대감 개인의 뜻이 아니고, 백성들의 뜻이라면, 내 목을 벨 자는 없을 것”이라는 그의 장담을 듣고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자가 누구인가 백성의 판단에 맡겨 보자고 도쿠가와는 결심했습니다.

야시로는 들 가운데 구덩이에 목만 내놓은 채 파묻혔습니다.
그 옆에는 야시로의 죄상을 적고 “이 자를 밉다고 생각하는 통행인은 한 번씩 목에 톱질을 하라”는 내용의 팻말을 세우고 대나무 톱을 놓아 두었습니다.
야시로는 세 치 혀끝으로 구국위민의 변을 늘어 놓았으나, 닷새 만에 행인들의 톱질로 동맥이 끊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에게 “바보 같은 놈, 짐승 같은 놈들” 이라고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

나가야스는 원래 광대 출신으로 무한한 아이디어와 실행력으로 도쿠가와의 환심과 신뢰를 얻었습니다.
궁중무대에서 준수한 얼굴과 북 치는 솜씨를 인정받아 발탁된 나가야스는
도쿠가와가 천하통일과 국가안정의 기틀을 잡아 가는 과정에서 지혜와 총명을 한껏 발휘하여,
장군과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거점인 오사카성에서 막부의 중심이 된 토쿄에 이르는 길에 십리총이라는 이정표를 세워, 거리를 쉽게 짐작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여성 인구가 적은 에도에 유곽을 세워 무질서한 성 매매를 근절시키고, 도둑 무리를 모아 재건대를 조직하여 생업을 갖도록 하는가 하면,
오늘의 긴자(銀座) 거리 조성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습니다.

그보다 더 도쿠가와를 만족시킨 것은 그의 광맥잡이 기술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광대로 전국을 떠돌며 온갖 경험을 터득한 나가야스는 사도 섬에서 금광을 발굴, 막부의 부를 일궈줄 광산 책임자가 되었으며,
공로를 인정받아 중앙정부의 잡무감독관 자리까지 얻고, 장군의 여섯째 아들을 보좌하는 지위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금이 나가야스를 나락의 지경으로 몰고 갔습니다.
장군의 손녀가 출가한 오사카성에서 우연한 기회에 도요토미가 남겨 놓은 거대한 금괴를 보게 된 그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채 몽상의 꼬리를 잇기 시작했습니다.
도요토미의 측실에서 태어난 철부지인 오사카성 성주는 도저히 막대한 금덩어리를 제대로 활용할 위인이 못 된다는 망상입니다.

사도섬 금광의 산출량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몫도 늘게 된 나가야스는 오사카성의 60만 석짜리 영주가 되거나,
영주 보좌역을 맡는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익히 알고, 일찌감치 꿈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보좌하는 장군의 여섯째 아들을 기반으로 삼아, 황금을 이용하여 무역왕국을 건설해 보겠다는 야망이었습니다.

야망은 또 다른 야망을 키워 나가야스는 자신이 생산한 금을 은밀히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위치가 막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때까지 재화를 숨겨 두었다가 꿈을 펼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수 백 명의 금광 인부들과 아낙네까지 계곡에 암매장한 뒤 사고사로 위장하는 끔찍한 일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나가야스의 범죄는 자신이 측실로 데리고 온 여인이 정성껏 기록해 온 일기가 발견되면서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해 온 그는 술만 취하면 자신의 허황된 꿈과 기량을 털어 놓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측실은 예사롭지 않은 나가야스의 행적과 언행을 꼬박꼬박 써서 남긴 댓가로 막부의 위기를 구해 낸 것입니다.

400년 전의 일을 새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그 시절의 상황이 오늘의 반면 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가 야시로와 오쿠보 나가야스의 공통점을 더듬어 보면 더욱 용인(用人)의 어려움이 선명해질 것입니다.

우선 야시로나 나가야스는 둘 다 한미한 출신이지만 상당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모두 주군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고속출세 이후에는 영주도 신하들도 별난 사람이 아니라는 자만심이 생겨 저도 모르게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분수를 망각하고 자기의 ‘그릇’을 과대 평가 했습니다.
작은 그릇에 너무 큰 물건을 담으려다 그릇도 물건도 깨는 우를 범했습니다.

또 하나는 민심을 자신의 편이라고 한 착각이었습니다.
민심은 진정한 지도자 아래에서는 천시와 지리를 얻지 못해도, 헐벗고 굶주려도 남을 탓하지 않고 따를 줄 압니다.
재승박덕하거나 과대망상가 보다도 ‘샘이 깊은 물, 뿌리 깊은 나무’ 옆에 있어야 백성이 편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역사의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