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9-04 09:20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26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는 사분오열된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다.
춘추전국시대 초기 입지나 규모 면에서 보잘것없었던 진나라가 어떻게 강대국이던 한(韓), 위(魏), 초(楚), 연(燕), 조(趙), 제(齊)나라를 차례로 제압하며 춘추전국시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 비결은 다양성을 존중한 진나라의 인사정책이 아니었을까싶다.

진나라 정부는 인재를 등용할 때 출신 지역이나 배경을 따지지 않고 능력만으로 선발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예컨대 진시황의 중국통일 시점부터 거슬러 약 100년 동안 진나라 총리를 지낸 사람은 대부분 타국 사람이었다.

본래 인간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과 어울리기를 즐기지 않는다.
특히 우리 민족, 우리 사회는 집단주의적 문화가 강해 튀는 사람을 배격한다.
획일적 집단주의란 집단 동질성을 강조해 개인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혼자만 다른 음식을 주문하려면 왠지 께름칙하고,
회식 자리에서 개인적인 일로 남들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장애인이나 혼혈인이 동정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우리’라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유행을 선도하는 연예인 한두 사람이 란제리 패션을 입기 시작하면
얼마 되지 않아 강남 거리는 란제리 패션 일색이 되곤 한다.

시대마다 요구되는 성공 방정식이란 것이 있다.
현재 우리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고,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가치는 다양성이라고 본다.
예전 진나라 때와 마찬가지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라에 세계 각지의 유능한 인재가 몰린다.
우리가 그토록 자부했던 단일민족은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다.

글로벌 시대는 기업과 국민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다.
기업은 값싼 노동력과 광활한 시장이 근접한 곳으로 생산시설과 영업본부를 이전한다.
또한 자기 나라 교육환경이 경쟁력을 상실하면 주저하지 않고 자녀를 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이런 시대에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피부색을 가졌다고 차별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다.
하루빨리 폐쇄적 ’우리’를 버리고 차별성을 존중할 줄 아는 열린 사회로 변모하지 않으면
국제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양성을 수용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중앙정부 권력을 축소해야 한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일찍이 연방정부가 권력을 행사하기보다
주정부, 주정부보다는 지방자치단체가 행사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권력 분산은 자치단체 간 경쟁을 촉발하고 각 자치단체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차별화 정책을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강남구민은 강남구가 시행하는 정책이 싫으면 서초구로 이사할 것이기 때문에
강남구는 구민 이탈을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시행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에게는 대안 선택이 어렵다.
그러므로 국가는 잘못된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대학입시도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학생 선발기준 등 입시 관련 정책을 천편일률적으로 정하지 말고
각 대학에 가능한 한 많은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한쪽에서는 창조적 인재 육성을 부르짖으며 다른 한편으로 3불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는 획일적 교육정책 아래서 어떻게 대학이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고
양성할 수 있겠는가.
창의성이란 개별 행위의 다양성과 차별성을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필자가 10여 년 전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에 재직할 때
한 동료 교수 연구실에 걸려 있던 사진이 문득 떠오른다.
혓바닥을 길게 내밀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아인슈타인이었다.
1950년대 아인슈타인은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유명인사였기 때문에
항상 신문잡지 기자들에게 표적의 대상이었다.
자신의 생일축하 행사를 마치고 차에 타려는 그에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신문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몰려들며 포즈를 취해 달라고 요청하자 짜증이 난 그는 혓바닥을 길게 내밀었다.
많은 미국인이 이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아인슈타인을 더 사랑하는 것을 보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그들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만 하다.

우리나라 유명인이 이런 기이한 행동을 한다면 우리 반응은 어떨까.
아마도 부정적 반응을 염려해 튀는 행동을 하는 유명인도 없겠지만
그 같은 행동을 순수하게 봐 주는 사람도 드물 것 같다.

                                                            김병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